'수도권 非필수과'에만 몰릴라 우려…'현장투입까지 공백 메우기'도 중요
정부, 수가 인상 등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로 의사들 필수·지역의료 유도
"강력한 유인책 없으면 필수의료 분야로 안 갈 것" 우려

정부, 의대 증원 규모 발표서울의 한 의과대학. 2024.2.5 kjhpress@yna.co.kr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6일 대폭 확대된 의대 입학정원을 발표하면서 늘어난 의료 인력을 붕괴 위기에 빠진 지역·필수 의료로 유인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이달 초 꺼져가는 지역·필수의료의 불씨를 살리고자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책 패키지를 내놨지만 아직 정책의 구체성이 드러나지 않았고, 재원 마련 등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정원 확대로 늘어난 새내기 의대생들이 의료 현장에 투입되기까지 걸릴 10여년의 기간에 필수의료 공백이 당장 메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의대 정원 확대로 첫 단추를 끼운 '의료개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 의사들을 지역·필수 의료로 유인할 정책의 실효성을 키우는 과제가 남았다.


"의료 개혁"…정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공개

 

정부는 이달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토론회를 열고 ▲ 의료인력 확충 ▲ 지역의료 강화 ▲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 4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관련 수가(酬價·건강보험 재정에서 병의원에 지급하는 의료행위 대가)도 집중적으로 인상한다.

난이도, 위험도, 숙련도, 대기·당직시간 등을 고려한 '공공정책수가'를 추가로 주는 방안을 분만·소아 분야에 우선 적용하고, 중증·필수의료 인프라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사후에 보전하는 '대안적 지불제도'도 도입한다.

정부, 의대 증원 규모 발표서울의 한 의과대학. 2024.2.5 kjhpress@yna.co.kr [연합뉴스 자료사진]

 


의사들, 실제로 필수의료로 갈까?…"미용·성형 쏠림 심해질 것"

 

정부가 여러 유인책을 내놨지만, '약발'이 서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장의 반응이다.

앞으로 늘어날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가기는커녕 오히려 미용이나 성형 등 인기 과목에 더욱 몰릴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예상이다.

한 의협 관계자는 "반드시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가 늘고 지역 의사가 양성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오히려 미용·성형이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 그때는 정책적 해결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비판은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의사 수 부족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는 있으나 필수의료 정책들에는 장밋빛 기대만 담겼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두고 "이름은 종합대책이지만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와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 '의사 달래기'용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경실련은 특히 확충된 의대 정원을 어떻게 지역·필수의료 분야에 배치할지에 대한 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의대 입학정원 증원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늘어난 의사들이 지역·필수의료 분야로 갈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남 국장은 "특히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국회에 발의된 지역의사제법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무 복무 미이행에 따른 페널티가 있어야 하는데,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나중에 계약을 어기더라도 위약금만 물면 그만"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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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지역에서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할 의사와 정부가 계약을 맺는 것. 의대생 때부터 대학과 지자체 3자가 계약해 장학금과 수련비를 지원받고 졸업 뒤 교수 일자리와 정착 지원을 받는 대신 일정 기간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


그러면서 "지금은 희망이나 기대만으로 정책을 꾸려서는 안 된다"며 "늘어난 의대생으로 의사 부족을 메울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들은 결국 돈벌이가 되는 분야의 의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도 "의대 증원은 더 많은 의사를 배출해 무너지는 지역·필수의료 체계 붕괴를 막을 중요한 정책 수단"이라고 일단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다만 "지역·필수의료를 책임지겠다는 대학에 정원을 더 늘려주고, 대학과 대학병원이 지역 병원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책임지도록 하지 않으면 늘어난 의대 정원은 대학병원이 몸집을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고, 수도권 환자 쏠림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순 의대 입학정원을 늘림으로써 현재 지방 의사 부족이나 필수의료 의사 부족 현상은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정부에서 이러한 정책을 낸 논지의 근거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적다는 것에 있다. 이를 근거로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고 의사수를 늘리겠다는 것은 잘못된 방침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지역.필수의료 부족 현상은 의사 수가 원인이 아니라, 배치의 문제이다. 실제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은 의사가 없어 환자들이 의사들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은데, 개원의만 너무나도 많은 상황이다. 이러한 의료계의 입장은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말 집 밖으로 나가서 우리나라만큼 빠르게 개원의를 찾아볼 수 있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만 보아도 의사 수가 적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OECD Health Statistics'에서 제공하는 DATA를 보게 되면 2020년을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 당 병원 수는 분석 대상 국가 전체 평균 29.97개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79.21개이다. 평균을 2.5배 이상이 넘을 정도로 많은 것이다. 그만큼 의료접근성 자체는 뛰어난 것이다.

 

하지만 병원(여기서 말하는 병원은 동네 의원같은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 같은 곳을 말한다) 1개소당 분석 대상 국가 평균 의사 90명을 보유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16.03명이다. 의과 대학에 들어가 필수의료의 중심과 근본이 되는 병원에서 근무하지 않고 대부분이 독립하여 개인 병원을 차리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를 기준으로 보게되면 예전부터 의사 인력은 늘 적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도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보건의료 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리려는 피나는 노력 끝에 지금과 같은 질적,양적 성장을 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기형적인 문제가 생겨났다. 과연 이러한 문제를 단순 의사 수 증가,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등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에서는 직접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달라는 이야기만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보아도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와 접근성은 정말 뛰어난 수준이다. 이러한 의료 체계가 부디 무너지지 않도록 의료계와 정부와의 생산적인 소통을 통해 좀더 근본적인 대책이 발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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