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ㅎㅎ
오늘은 갑자기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바티칸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ㅎㅎ
교황청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죠. 바티칸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위치해있으면서 독립적인 국가로 유지되고 있는 특이한 국가이죠. 그럼 바로 알아보시죠 ㅎㅎ
바티칸 시국은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위치해있고, 국경 역할을 하는 장벽으로 둘러쌓여 있다. 바티칸 시는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해 총 면적은 0.44㎢에 인구는 수백명에 불과하다. 서울시 여의도 면적의 6분의 1정도로 보라매공원 크기와 비슷하다ㅎㅎ
이전에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한 교황령(756~1870)이 있었으나, 19세기 이탈리아 왕국에 강제 병합되었고, 10년 후에 1870년에는 로마와 더불어 나머지 다른 지역도 모두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소멸했다. 바티칸은 교황이 통치하는 일종의 신권 국가로, 전 세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총 본산이다.
역사
바티칸이 자리 잡기 전에 바티칸 언덕은 원래 고대 로마인들이 로마 신화의 키벨레와 그 배우자 아티스를 숭배하던 곳이었다. 때문에 로마인들은 이곳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통행과 정착을 엄격히 금지했다. 로마 황제 칼리굴라(37년 ~ 41년)는 이 곳에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만들었고, 나중에 황제 네로 시대에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 광장 중앙에 장식된 오벨리스크는 본래 칼리굴라가 원형경기장을 꾸미기 위해 서기 37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로마로 가져와 경기장의 장식에 사용되었다.
서기 64년 로마에서 일어난 대화재 이후 바티칸 언덕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는 장소가 되었고, 성 베드로가 이 순교자 중 한 사람이었다. 4세기 초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이 언덕은 다신교의 각종 이교 신들을 위한 제단과 무덤, 비문 등이 만들어졌다. 이는 교황 비오 12세에 본격적으로 대규모적인 발굴 작업을 착수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326년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최초의 성당인 옛 성 베드로 대성전이 지어졌고, 5세기 초에 대성전 근처에 교황의 궁전이 지어지면서 이 지역은 점차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교황의 권력은 점차 커져갔고, 19세기 중반 신흥국가인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기 전까지 약 천년동안 로마와 그 주변 지역들을 장악해 교황령이란 이름 아래 다스렸다. 이 시기 대부분 교황들의 거주지는 바티칸이 아닌 라테라노 궁전이었고, 아비뇽 유수기(1309년 ~ 1377년)를 제외한 최근 세기 동안에는 퀴리날레 궁전이었다.
19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민족주의자들이 창궐하고 교황청은 점점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갔고, 1870년에는 수도인 로마마저 점령당하면서 교황의 소유지들은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1861년부터 1929년까지 60년 동안 이러한 상태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이로 인해 천년 동안 이어지던 교황령은 종말을 고하고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의 상층부들은 바티칸으로 대거 피신했다. 교황령이 이탈리아에 병합된 이후에도 이탈리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교황청의 이탈리아로부터 독립적인 국가로서의 지위를 계속해서 인정했다. 이탈리아는 바티칸 안에 있는 교황청에 대한 무력 행사를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퀴리날레 궁전을 포함해 교회 재산의 상당수를 몰수했다. 이런 상황은 1929년 2월 12일 이탈리아 정부와 교황청 간에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하면서 종식된다.
라테라노 조약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교황 비오 11세 양측으로부터 전권을 이양받은 베티노 무솔리니와 피에트로 가스피리 추기경에 의해 조인되었다. 이 조약으로 이탈리아는 바티칸 시국을 독립국가이며 교황청의 소유와 국제법상 치외법권을 인정했고, 가톨릭 교회를 이탈리의 국교로 삼았다. 바티칸 또한 로마를 수도로 한 이탈리아 정부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더불어 라테라노 조약에 만대되는 이전의 모든 법들을 폐기햇다. 라테라노 조약은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이 물러나고 1947년 이탈리아 공화국이 들어선 후에도 그대로 채택 되었다.
국가원수와 정치
교황은 직무상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자 바티칸 시국의 정부 수뇌자이다. 교황직은 선거군주제로, 추기경단에서 선발한다. 또한 법적으로 교황은 절대 군주에 해당하며, 바티칸 시국의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현재 교황은 유럽에 남은 유일한 절대 군주이다. 교황은 콘클라베에서 여든 살 이하의 추기경들이 선출한다.
평상시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사도 궁전에 거주한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이 나라의 주권자이며, 입법권은 5년마다 교황이 임명하는 추기경들로 구성된 바티칸 시국 주교회의가 갖고 있다. 행정권은 바티칸 시국 주교회의 의장이 갖고 있고, 총비서와 총무대리가 보조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의 대외관계는 국무원과 외교관들에게 맡기고 있다. 하지만 역시 교황은 바티칸 시국 일대에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행정,입법,사법권을 가지고 있다.
군사와 치안
과거 교황들이 교회군의 일부로 스위스 용병들을 고용하긴 했지만, 교황의 개인 경호원으로서의 스위스 근위대는 1506년 1월 22일 교황 율리오 2세에 의해 창단되었으며, 오늘까지도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2005년 말엽, 근위병의 숫자는 134명이 됬다. 신병은 성좌와 스위스 간에 맺은 특별 협정에 따라, 스위스 국적의 젊은 남자 가톨릭 신자로 제한된다.
바티칸 시국에는 경찰력으로 활동하는 국가 헌병대도 있다. 정식 명칭은 '바티칸 시국 국가헌병대'이지만, 때때로 '비질란차(Vigilanza)'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기후
바티칸의 기후는 로마와 똑같은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이다. 5월부터 8월까지는 비 오는 겨울이고,8월 중순부터 9월까지는 건조한 여름이다.
경제
바티칸 시국의 경제는 유일무이한 비영리적 경제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보내는 봉헌금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받거나 우표와 기념품 판매, 미술관 입장 수수료 그리고 출판물 판매 등으로 재정을 충당한다. 바티칸으로 들어오는 봉헌금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른바 베드로 성금이다. 6월 마지막 주일에 전 세계 가톨릭 교구에서 성 베드로 사도의 이름으로 모금된 봉헌금이 바티칸에 전달된다. 바티칸에서 근무하는 평신도 노동자들의 수입과 삶의 질 수준은 로마 시민과 별 차이가 없다.
인구와 언어
바티칸 시민 594명 (2022년 8월 4일 기준) 가운데 거의 대다수는 바티칸 성벽 안에 거주하며 그 외 나머지는 외국 주재 교황대사관에서 성좌의 외교 활동을 맡고 있다. 바티칸 시민은 대체로 교황청 공무를 수행하는 성직자와 스위스 근위대 이렇게 두 집단으로 구성된다. 바티칸 인력의 과반수를 이루는 3천 명의 평신도 대다수는 바티칸 밖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국민이며, 이탈리아 외 다른 나라의 국민은 소수이다.
바티칸의 공용어는 이탈리아어이다. 가톨릭 교회의 공식 문서 가운데 권위 있는 것들에는 라틴어가 자주 쓰이고, 입법과 공식 보도에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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